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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04.28 옥계 굴참나무숲
posted by Siwol 2010.04.28 13:36
소재지 :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
방문시기 : 2010년 4월 8일
구분 : 동구숲, 당숲

가끔 숲은 자신을 감추고 아무리 찾으려고 애를 써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때가 있다. 여기가 숲이려니 짐작하고 떼를 써봐도 그저 나무 몇 그루 지나가는 바람에 잎만 껌벅거릴 뿐이다. 그렇지만 넋을 놓고 길을 가다가도 아주 우연히 불꽃 타오르듯 생명으로 찬란한 숲을 마주하게도 된다. 그런 것이다. 숲은 그렇게 내가 조금 열어놓은 마음의 창으로 스며들어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내 마음을 새들의 지저귐으로 가득 차게 한다.

강릉시 옥계면 산계리에 있는 굴참나무군은 그렇게 살며시 다가와 위로를 주는 숲이다. 사람이 찾기 힘든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지만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사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찾지 않아 외로워하는 숲도 아니다. 그저 그 자리에 있으면서 자연을 지키고 묵묵히 사람을 바라보는 작은 숲이다.   

그 숲의 크기가 작아 숲이라는 이름을 붙이지 않고 굴참나무군(群)이라고 부른다. 12그루의 굴참나무 무리에 한그루의 소나무가 눈에 띄는 이 굴참나무군은 그러나 마을 숲으로서의 기능을 다해왔던 숲이다.

굴참나무 숲을 소개하는 데는 숲까지 가는 여정도 함께 적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숲이 갖는 마을숲으로서의 기능과 의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4륜구동 차량이 아니면 좁은 산길을 가기 힘드니 산계2리의 마을회관 앞에서부터 걸어 들어가는 것이 아예 속편하다. 산계2리 마을회관 앞에서 계곡 위에 놓인 시멘트 다리를 건너며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집 앞을 지나 급경사의 시멘트 포장된 농로를 오른다. 이때부터 큰 굽이가 없는 산길을 따라 걸으면 지금은 그 색이 바랜 산촌 사람들의 살았던 흔적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다.

산의 구릉 쪽으로는 넓은 밭이 자리 잡고 있다. 화전으로 개발된 이 밭은 아직 경작되고 있는 흔적이 보인다. 밭이 시작되는 쪽에 삼척 김씨 성을 가진 분의 묘가 따사로운 햇빛을 맞으며 자리 잡고 있다. 삼척에서 강릉까지 마을이나 산이나 어렵지 않게 삼척 김씨 성을 가진 분이나 흔적을 찾을 수가 있다. 삼척 김씨는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여덟 번째 아들인 추(錘)를 시조로 하고 있다. 추의 아들 위옹(渭翁)이 실직 군왕의 위치에 올라 위옹을 시조라 하는 이도 있다. 천년의 세월을 지내온 왕국의 왕자가 나라가 바뀌면서 경주에서 먼 삼척까지 와서 자리를 잡아야 했던 것이다. 지금은 삼척 일대에서 중요한 성씨이다.  


삼척 김씨 묘

산골의 밭에는 옥수수나 감자를 심은 흔적은 보이지 않고 그 위에 엄나무들이 빽빽이 자라고 있다. 옥수수나 감자 같은 작물은 식량 작물로 가치가 높지만 젊은이가 적은 산촌 마을에서 연로한 농사꾼들이 손이 많이 가야 하는 작물보다는 한번 심어놓으면 자주 손이 가지 않는 엄나무는 훌륭한 대체 작물이다. 봄철에 나는 엄나무 순을 두릅나무처럼 나물로 잘라 팔고 가지들도 잘라 약용으로 팔 수 있으니 수익도 그렇게 불리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 봄이 오면 엄나무 순을 자르느라 이 산골이 부산해지리라.
 
엄나무가 심겨지지 않은 곳에는 파릇한 달래들이 자라 올라 있는데 달래 역시 이 산골마을의 중요한 경제 작물 중 하나이다. 달래 역시 많은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아 이 지역의 사정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숲으로 가는 길은 한두 번 경사가 험한 곳이 있을 뿐 계곡을 따라 비교적 평탄한 산길이 이어진다. 계곡의 사면은 바위가 드러나며 절경을 이루고 있는데 이 바위 사면에는 회양목들이 자라고 있다. 회양목은 이곳의 지질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졌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게 해주는데 그래서인지 강릉에서 삼척으로 이어지는 영동 지역에는 시멘트 광산과 공장이 유난히 많다. 이곳에도 유명한 시멘트 공장이 바로 붙어 있다. 

계곡에 핀 생강나무의 노랗게 화사한 꽃을 바라보며 유난히 춥고 눈이 많았던 지난겨울도 계절의 변화 앞에서는 어쩔 수 없구나 하는 감상에 젖는다. 사람은 열두 달의 조각들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예쁜 이름을 붙여 그에 따르고 세상의 흐름을 기록하지만 글 하나 모르고 종이 하나 갖지 않았어도 생물들은 계절의 흐름을 잘도 느낀다. 이제 우리는 시계가 없으면 세세한 시간 나눔을 하지 못함에 두려워하고, 일 분 일 초의 시간에는 예민하면서도 정작 자연의 흐름은 느낄 줄 모르는 생태맹生態盲들이 되어가고 있다. 봄의 계곡의 물은 맑고 투명하지 못하다. 사방에 긴장을 푼 흙들을 감싸 안고 모인 물들은 흰 포말로 부서져 내리면서도 비춰지는 햇살을 조금씩 잡아먹어 밝게 빛나지도 않는다. 그러고 보면 이 화전 많은 산골에도 나무가 우거진 숲이 더 필요한 게다.
 
등산화에 더께더께 달라붙는 흙을 털며, 쉬며 누군가 계곡으로 흘러내린 흙을 대신해 바위를 부숴 채운 길을 지나니 낡은 집 한 채가 쉬어가라 한다. 낡은 냉장고가 마당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살지 않는 이 집의 작은 마당에는 늙수그레한 배나무가 한 그루 서 있고, 그 옆에 회양목 두 그루가 손님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반갑게 서 있다. 도시에 있었으면 둥근 모양이나 세모, 네모로 다듬어졌을 회양목이지만 이곳에서는 그저 주변에서 쉽게 만나는 나무로 편하게 제 마음대로 자라 있다.

집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지게에 굴참나무로 만들어진 벌통을 지고 산에서 내려 오셨다. 보통 산골에서 벌통으로 이용하는 나무는 피나무나 버드나무처럼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나무를 이용한다. 하지만 속을 파내기가 쉽지 않고 썩지 않도록 소금물에 담거나 하는 일들이 번거롭기에 요즘은 대부분 사각으로 만든 제품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 지역 사람들은 굴참나무를 굴피나무라고도 하는데 코르크층이 발달한 굴참나무의 껍질을 이용해 굴피집을 집거나 벌통을 만들기도 한다. 할아버지가 가져온 벌통은 굴참나무의 속을 파내 만든 것이었다. 할아버지와 인사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할아버지는 이 집의 주인인데 집이 여러모로 불편해 산 아래 마을에 새로 집을 지어 그곳에 살면서 벌을 치거나 엄나무 관리하러 올 때만 잠시 들른다고 하신다. 굴참나무 숲을 이야기 하니 산모퉁이 돌아 소나무밭만 지나면 바로라고 한다.

다시 떠난 숲으로 가는 길의 그늘에는 아직 눈이 녹지 않았다. 그 위로 고라니의 발자국이 길게 이어지고 있는데 사람의 발자국을 찾아 볼 수 없는 이곳에서 주인은 들짐승들이다. 들짐승들의 길에 낯선 나그네 하나가 발자국을 더한다. 그래도 양지쪽의 길은 얼은 흙이 녹아 질퍽거리는데 무한궤도의 자국이 나 있다. 이런 곳에 무한궤도가 들어온 것은 산속 깊은 곳에 있는 나무들을 베어내려 산판(山坂)용 도로를 만들기 위함이다. 좀 전에 만난 할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이곳은 원래 좁은 산길만이 있어 물건을 옮기려 해도 지게로 지고 날라야 하는 길이었다고 한다. 산판용 도로가 생긴 것은 최근의 일인데 산길의 사면에는 뿌리 쪽이 부러진 소나무, 층층나무, 물푸레나무 등이 눈에 띈다. 

천왕문을 지키고 있는 금강역사처럼 산길을 지키고 선 소나무 숲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깊은 호흡을 한다. 소나무 숲을 지나 모퉁이를 도니 작은 계류가 내려와 만나는 골짜기의 안쪽에 굵은 굴참나무들이 서 있는 것이 한눈에 들어온다. 숲의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굴참나무는 가슴높이 둘레가 5.27미터나 되고 높이도 30미터가 넘는 수령이 400년 정도로 짐작되는 나무이다. 이 나무는 줄기의 아래 둥치가 옆으로 비스듬한데 이 주변에서 키우는 흑염소들이 나무를 타고 올라가 그 위에서 자주 노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고 한다. 예전처럼 사람들이 살았다면 흑염소가 이 나무에 올라가는 것이 허락될 리 없지만 사는 이가 적었던 때에는 허물이 되지 않았나 보다. 이 밖에도 수령이 백 년이 넘어 보이는 곧고 굵은 굴참나무들이 열한 그루가 더 있다. 사람은 얼마만큼의 세월을 살아야 저 나무들처럼 한눈에 연륜을 알아보면서도 장엄해 보이는 모습을 지닐 수 있는 것일까? 인간의 세대를 훨씬 뛰어 넘는 나무의 연륜 앞에서 세상 한 살이를 왈가왈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초라한 일인가. 이 숲에는 굴참나무 못지않은 소나무도 한 그루 서 있지만 굴참네 집에 놀러 온 것처럼 별나 보인다.

이 숲은 이곳 산촌 마을의 동구에 위치하고 있는 동구숲에 해당된다. 지금 남아 있는 집이라야 숲 위로 고작 세 채만이 눈에 띌 뿐인데 마을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도 되지 않지만 산골의 계곡에 숨어 있는 산촌 마을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두 계곡이 만나는 입구에 서서 마을을 가려주는 이 숲은 이곳에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마을 입구의 숲이었으리라.


굴참나무숲
   
굴참나무는 경사가 심한 계곡 주변이나 산비탈 같은 곳에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굴참나무가 이런 지역에서 잘 자라는 것은 수분 스트레스에 강한 굴참나무의 특성 때문이다. 특히 이곳의 지형처럼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지형은 물 빠짐이 좋아 수분이 토양 속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짧고, 그 양도 적어 식물들이 강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점을 생각하면 굴참나무는 이 지역에 가장 잘 어울리는 나무라고 할 수 있겠다. 대게 참나무를 가구재와 같은 목재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곧게 자란 부위가 2미터 이상은 되어야 경제적인 효용이 있는데 굴참나무는 쭉쭉 자라 뻗는 수세(樹勢)가 다른 참나무들에 비해서도 뛰어나므로 조림을 하는 곳에 잣나무나 일본잎갈나무를 심는 것보다 굴참나무를 심는 게 좋지 않을까? 

이 마을숲은 주민들이 해마다 당제를 지내기도 하던 곳이다. 산계2리에 사는 분에게 물어 보았더니 지금도 옆에 있는 마을 사람이 이곳에 와서 일 년에 한 번은 당제를 지내고 간다고 한다. 정확한 날짜를 물어보았으나 잘 기억 못하고 당제를 지낸다는 분도 만나질 못해 다음을 기약할 수밖에 없었다. 숲 안에는 네모 낳게 돌로 얕은 담을 쌓은 흔적이 보이는데 아마 이곳도 당제를 지내는 데 사용된 것이 아닐까 싶다.
     
서 있는 굴참나무 중에는 나무를 지탱해주는 심재 부분이 썩어 치료해줄 필요가 있는 것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2009년에는 이 숲이 관리되지 못해 굴참나무의 심재 부분이 썩어 나무의 공동화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어 조속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기사가 언론에서 다루어지기도 했다. 숲을 보다 건강하게 오랫동안 보전하기 위해서는 숲을 구성하고 있는 나무들의 건강이 중요하다. 더구나 백 년, 이백 년 넘은 고목들에게는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기도 하다. 비록 속이 빈 나무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곳의 굴참나무는 아직도 도토리를 맺는다고 한다. 중년만 되어도 산도를 닫아버리는 사람의 생리와는 크게 다른 나무의 강한 생식력에 감탄스러울 뿐이다.

숲과 붙어 바로 옆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 한 채 있다. 주인은 이곳을 다시 찾을 요량이었는지 방으로 들어가는 문은 모두 잠그고 문패도 떼지 않았다. 눈금이 ‘0’으로 되어 있는 전기계량기는 이곳에 계량기를 새로 단 후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집을 떠났음을 짐작케 한다. 이 집의 주인 역시 이 산골의 아래쪽에 있는 마을로 내려가 집을 마련해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빈집의 돌담 위에 자라고 있는 회양목만이 푸른 잎이 가득 달려 살아 있는 느낌을 준다. 창호지가 찢겨진 방문 틈사이로 집안을 살펴보는데 등 뒤에서 후다닥 소리가 난다. 깜짝 놀라 뒤 돌아보니 햇볕에 반쯤 녹아 함석 지붕을 타고 내려온 눈이 마당으로 떨어지는 소리였다. 집안에는 굴참나무로 만든 벌통이 먼지 속을 굴러다니고 있고 물건들이 쓰레기처럼 쌓여가고 있어 폐가는 보기에 좋은 모습이 아니다.


굴참나무숲 옆의 빈집


그럼 이 숲을 가꾸기 위해 폐가를 없애는 것이 좋을까? 이것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굴참나무 숲의 위쪽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집은 흙과 목재를 위주로 지어진 집이다. 이 집의 곳곳에는 산골에서 살았던 이전 집주인의 채취가 묻어 있다. 집주인은 이 숲을 중심으로 한 골짜기에 살면서 이 숲을 지키는 역할을 해왔다. 일 년에 한 번 나무에 제를 지내고 나무와 함께 나이를 먹었을 것이다. 현재 몇 가지 버려진 것들만 정리한다면 이 집이 굴참나무 숲을 헤치고 있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다. 나지막한 돌담과, 물이 머물러 나가던 돌로 쌓은 못의 흔적, 묻힌 채 금이 간 항아리, 산나물 같은 것을 걸기위해 처마 밑에 가로로 길게 나무를 대어놓은 것이라든지 집에선 이전에 사람이 살던 흔적을 읽을 수가 있다. 한때는 건조막으로 쓰였거나 화장실이나 창고로 쓰였을 흙으로 지어진 작은 흙집은 튀지 않으면서도 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이 집의 원형을 그대로 보전해 굴참나무숲 곁에 그대로 두는 것도 산촌의 문화를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숲의 곳곳에는 빈 소주병들이 있다. 이 숲을 찾은 누군가가 버리고 간 모양이다. 근처에 있는 소똥이 오래된 것이 아님을 보면 가축을 몰고 가끔씩 이곳을 찾는 이가 있는 가 보다.  그가 마신 술의 이유가 삶의 신산(辛酸)이라기보다는 흥취에 의한 것이길 바라는 마음이다.

굴참나무 숲을 뒤로 하고 마을로 내려와 인진쑥을 고아 엿으로 만들어 파시는 분의 집에 잠시 들렀는데 아직 점심을 안 먹었을 것이라며 자꾸 밥을 권해 맛있게 먹고 나니 커피까지 한 잔 내주신다. 식탁 옆을 보니 점심으로 나에게 내주었던 반찬이 큰 통에 담겨져 있다. 아들 내외가 주말에 온다고 연락이 와 어제부터 잠 못 자고 만든 것이라고 하신다. 자식이라는 게 무언지 싶은데 오랜만에 낯선 이를 손님으로 맞은 집의 주인 할머니께서는 이 골짜기에 물난리 난 이야기며, 집이 떠내려가 정부지원금을 받아 집을 새로 지으려다 사기 당하고 빚을 오히려 더 지게 되어 그 빚을 갚으려 인진쑥 뿌리를 캐어다 키워 인진쑥 엿을 만들어 파는 이야기까지 자분자분 들려주신다.

숲에 바로 붙어살던 사람들은 이제 아랫마을로 내려와 다른 집에서 살고 있지만 숲에 대한 마음은 변함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아직도 숲을 중심으로 해 살아 가고 있으며 서로가 서로에 의지해 인생의 노년기에 맞는 외로움을 달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이 마을의 상징인 굴참나무 숲을 어떻게 보전하고, 주민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올 수 있도록 꾸미는 것이 이제 남은 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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