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자연과 인간

산속걷기 - 사투


사투

산 중턱에 있는 골프장을 걷게 되었다. 골프장 안의 숲을 지나쳐야 할 일이 생겨 부득불 걷는 길이지만 골프장을 걷는 것은 그리 즐거운 일은 아니다. 평일이라 해도 연속적으로 코스를 지나는 골퍼들은 낯선 침입자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본다. 거기다 어깨에 카메라까지 메고 있으니 아무 잘못이 없다해도 별로 유쾌한 기분은 아닐 것이다. 나 또한 마찬 가지다. 남들은 여유 있게 공을 치며 걷는 길을 그 공에 잘못 맞기라도 할까봐 뛰어가듯 걸어가는 기분이 어디 신나는 기분일까. 그런 오래 머므르고 싶지 않은 길을 걷다가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었다. 골프장의 잔디밭에 잠자리 두마리가 붙어 있는데 그게 두마리가 서로 사랑을 나누는 것 같지는 않았다. 
잠자리, 특히 고추잠자리는 암컷과 수컷이 교미를 할 때 수컷의 꼬리에는 집게가 있어 암컷의 머리 뒷부분(목부분)을 꽉잡고 암컷은 수컷의 가슴에 있는 성기에 자신의 꼬리에 있는 성기를 갖다 붙이기 때문에 하트모양이 생긴다. 잠자리 암컷은 보통 여러마리의 수컷과 교미를 하는데, 교미를 할 때마다 다른 수컷은 암컷의 배에서 다른 수컷의 정자를 빼내지만 일부는 남아있게 되고 남아있는 정자가 서로 경쟁을 해 다음세대를 낳는다. 
그런데 이 두녀석은 암컷이 수컷의 허리를 꽉 깨물고 있다. 사마귀처럼 사랑을 나눈 뒤에 수컷을 잡아 먹어 영양 보충이라도 하려는 것일까? 가까이 다가가서 한마리의 꼬리를 잡아도 떨어질 줄 모르다. 무언지 모르지만 암컷의 심사가  단단히 꼬인것만 같다. 한참을 앉아서 쳐다보아도 그 자세를 풀줄 모른다. 수컷은 이미 기운이 많이 빠진 모습이고, 가끔씩 기를 쓰고 날아 오르다가도 곧 떨어져 버린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인간처럼 저 두마리도 인간하고 비슷한 잠자리의  역사를 써나가는 걸까? 
뜨거운 햇빛이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뙤약볕을 떠나 숲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숫고추잠자리의 무사를 빌어볼 뿐이다.  



 

'자연과 인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산길 걷기 - 밤이 익는 계절  (0) 2010.09.16
섬서구메뚜기  (0) 2010.08.10
산길걷기-앵자봉  (0) 2010.08.02
산길걷기-올무  (0) 2010.08.01
산길걷기- GPS  (0) 2010.07.28